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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나

음악과 나



 어릴 때 살던 곳을 주변에 다른 집이 50미터쯤 떨어져야 있는 시골이었다. 그나마 동네에 네 가구밖에 없고 200미터쯤 또 가야 다른 동네가 나오는 곳이라서 생활 소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텔레비전을 아주 크게 틀어 놓고 마당에서 놀다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소리가 들리면 들어가 보기도 했다. 

 조용한 동네이기 때문에 더 큰 소리로 음악을 즐길 수도 있었다. 아버지가 전축과 외국 클래식 레코드모음집, 이선희와 앨비스의 레코드를 가지고 계셨는데 그게 나의 음악 선곡 모음이 되었다. 라디오에 대해 잘 몰랐던 터라 가지고 있는 것만 들었고, 크게 들었다. 클래식 레코드는 사놓고 별로 안 들었는지 너무나 깨끗한 상태라서 뜯어보는 재미도 있었고 앨비스는 춤을 출 수 있어서 좋았고, 이선희는 목소리가 우렁차서 좋았다. 

 그러다 텔레비전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대중음악평론가에게 60점을 받고 첫 무대를 치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1집, 2집, 3집을 연거푸 히트하며 우리들의 우상이 되었다. 처음으로 카세트테이프를 직접 사고, 카세트플레이어를 사달라고 졸랐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 계시는 외할머니댁에 갈 때면 이어폰을 끼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곡을 따라 불렀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기억이다. 

 초등학교 때 합창부도 했었지만 내 목소리가 워낙 커서 잘 맞지 않아 중학교 때는 특별활동으로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새로운 친구들과 별로 친하지 않았는데 그 중에 친구를 아주 잘 사귀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최신 애니메이션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걸 즐기는 방법도 잘 알았다. 당시 디즈니의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등이 개봉했는데 그 때마다 거기에 나온 배경음악을 영어 그대로 불렀다. 그 애는 친구들하고 모여서 듀엣을 하기도 했는데 그런 적극성과 활달함이 부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a whole new world’를 부를 때는 그 아이가 내 우상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낯선 영어와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의 경이가 그 아이에게 옮아갔던 것 같다. 

 그렇게 소극적으로 남들이 부르는 노래에 귀 기울이기만 하고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볼 생각은 없었다. 남들은 라디오로 해철이 오빠를 찾고 있을 때 나는 대중적인 할리우드 영화, 홍콩 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었다. 고등학교 때 퀴어영화였던 해피투게더(춘광사설)의 ost 중 동명제목인 해피투게더 노래가 반에서 크게 유행했다. 친구들이 같이 부르기도 하고 텔레비전에서도 자주 나왔던 것 같은데, 어느 날 한 친구가 나에게 ‘너 영어 잘하지 않아? 이것 좀 번역해줄래?’라며 그 가사를 내밀었다. 나는 그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이미지를 갖는가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을 해 본 것 같다. 그다지 영어를 잘하지는 않았는데 어찌저찌 번역해주면서 그 친구와 그 음악과 그 영화를 다 좋아하게 되었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끝까지 외운 노래 가사였다. 

 사실 반 친구들이 자기만의 음악 프로그램이나 가수에 대해 팬심을 담아 이야기할 때 난 별로 할 얘기가 없었다. 관심이 부족하기도 했고 듣는 귀도 막귀였다. 용기 있게 테이프판매점에서 추천받아 들었던 것이 ‘마릴린맨슨’이었으니. 그래서 지금까지 좀 익숙한 옛 음악은 남들도 다 아는 노래들뿐이다. 예를 들면 마이클잭슨, 안치환, 마릴린맨슨. 

 대학에 들어와서는 목소리 멋있는 선배들이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러다가 남자친구가 음악은 좋아하지만 음치라서 노래방은 가지 않게 되었고, 사귄 지 8년째 되었을 때 같이 할 수 있는 취미를 찾다가 스윙댄스를 추게 되면서 음악을 다시 듣게 되었다. 미국의 20년대 음악에 춤을 추다 보니 스윙재즈뿐만 아니라 다른 춤곡인 블루스나 탱고 등도 더불어 듣게 되었다. 내가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남자친구가 자주 듣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줄 알았지만 애플뮤직도 결제해 놓고 별로 안 들었고, 스피커도 사 놓고 잘 이용하지 못했다. 어쩌다 드라마에 나오는 음악이 귀에 맴돌기도 했지만 그 때 뿐이었다. 그런 중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크면서 밤에 함께 누워서 불러 줄 노래가 필요해졌다. 어린이집에 다녀와서 노래를 부르는데 엄마가 부를 줄 모르면 너무 안타까울 것 같아서 열심히 동요를 찾아 들으며 외우려고 노력했다. 특히 인도에서 살 때에는 영어 노래를 불러줘야 했기에 진땀을 빼기도 했다. 덕분에 아이는 지금 다 잊어버렸지만 내가 외우는 영어 동요가 몇 개 있게 되었다. 내 인생에 가사를 외우는 노래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한국어 교원으로서 파견되어 나간 인도에서는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과 문화 수업을 함께 하고 싶어서 전문가 사물놀이 워크샵을 같이 수강하고 사물놀이 지도교사가 되었다. 학생들과 같이 배우기 시작했지만 장구, 꽹과리, 북, 징을 먼저 만났던 경험과 한국의 가락에 익숙함이 무기가 되어 학생들보다는 빨리 배우게 되었다. 워크샵이 끝나고 나서 새로운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함께 공연을 하기도 하면서 우리 가락의 흥겨움이 뿌듯해졌다. 음악을 좋아한다? 아니다, 여러 사람과 연습하고, 공연을 함께 하는 것이 즐거운 것이었다. 어찌 보면 사물놀이는 보는 사람보다 연주하는 사람이 더 즐거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 와서도 그 경험을 계속 이어가고 싶으니.

 음악을 그다지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음악은 나에게 사랑스러운 사람들, 그들과 소통하는 법을 소개해 주었다. 친구, 선배, 연인, 학생들... 내 주변의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 앞으로도 음악이 계속 나에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게 해 줬으면 하는 것은 너무 일방적인 바람일까.       



 이 글은 한국의예술과문화 쪽글 과제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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