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ith Text

어느 해 꿈


2002년 1020일 꿈에.

머리와 얼굴이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문지른 것 같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죽은 여인을 그리워하는, 그래서 어두운 빈방에 들어가면 꼭 그녀의 그림이 떠오르는, 그렇지만 사진의 형태가 아닌 선의 형태로, 그것도 스물스물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까만 선으로 그려진 머리가 긴 여인-의 이야기부터 말하자면, 항상 기분이 저조하고 마치 무언가 모를 것을 품고있는 것처럼 까만 머리의 아들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세상을 바라본다. 그것은 마치 어떤 뿌연 환상적인 매력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어필되지마는 아들의 어두운 내면과 죽은 여인에 대해 알고 있는 아버지는 그것이 못마땅하다. 아버지와 아들모두 다리 한쪽이 병신인데, 아버지는 오른쪽, 아들은 왼쪽이다. 아버지는 밀가루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물을 뿌린 것처럼 떡진 형태인데 어찌 보면 가발처럼 떠있고, 그들은 어찌 보면 연극하듯이 행동이 부자연스럽기도 하다. {가장 자연스럽게 웃는 사람은 아버지의 친구.. }

이들의 집 구조는 옛날 우리 집 같은 구조이다. 전체적으로 자 구조인 집에 북쪽으로 좌우로 길게 안방이 있고 안방 남쪽으로 방문을 열면 마루가 방만하게 있으며 안방 반 만한 작은방이 마루 끝에 안방 반대 변으로 있다. 이게 한 채이고 가운데 마당이 있는데 한쪽 편에는 물을 길어 올리는 펌프가 있다.

그 반대로 작은 채에는 작은 방이 대문과 연결되어 있고 그 북쪽으로는 사무실이 방과 연결되어있다. 사무실과 같은 서재에는 마당으로 연결되는 문이 나있다.

아들은 그날 아침에 아직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안방에서 서서 벽장 쪽을 바라보는데 그녀의 그림이 올라온다. 그녀의 그림은 크로키와 같다. 무언가 대화를 하는 듯 아들은 뭐라고 하는데 들리지는 않는다. 굉장히 어두운 분위기. 여인 그림은 벽장문에 걸쳐 마치 물위에 띄운 기름선처럼 흐믈흐믈 혹은 스물스물. 파장을 일으킨다. 분위기가 진짜 꿈같다.

아들은 날 마당에 서 있었다. 마치 그림을 볼 때처럼 마당 펌프 옆에 놓여있는 양동이를 바라본다. 양동이는 팔뚝만한 물고기가 가득 차 숨쉬기 위해 튀어 오르는 것처럼 그렇지만 양동이 밖으로 나가려는 의사는 보이지 않는 듯이 꾸물꾸물 위로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그녀의 그림이 떠오르던 안방에는 아버지의 친구들이 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주 떠들석한 자리이고, 아버지의 친구인 머리가 길고 약간은 거지같은 옷을 입은 그 사람은 정말 호방하게 웃는다. 머리는 마치 패션인 것처럼 길게 묶이고 따여 있고, 털실같은 것도 묶여있는데 키가 커서 무시할 수 없는 이미지. 이 사람만이 실제 인물이고 나머지는 연극하는 사람 같다. 그리고 약간은 동남아계 인물같기도 하고 페르시안계 같기도 한 한 중년의 남자는 느끼하게 생기기는 했는데 약간 뚱뚱하기도 하고, 검은 빛인 얼굴이 가볍게 씩씩 웃는다. 이 사람도 약간은 호방한 편이다. 다만 이 전의 사람이 너무나 호탕하게 웃고 좌중을 들썩이게 해서 제이인자로 남아있는 듯. 나머지 한사람은 한 할머니. 몸은 비대한 편이고 걸친 옷은 치렁치렁 집시 분위기인 이 사람은 얼굴이 하얗고 어딘가 곧 죽을 분위기의 병자같다. 쭈글쭈글하지도 않은데 병색이 완연하여 눈빛에 힘이 없고, 말하는데 입술이 달싹거려 말하는게 들릴 것 같지도 않다. 몸을 움직이는데 힘이 들고 지팡이를 짚는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이 때 그 펠시안계의 아들이 같이 왔는데 그는 얼굴이 아버지와 달라서 흰색이고 마치 하늘의 옥동자처럼 어딘가 깨달은 듯한 모습이다. 옥동같다는 말은 얼굴이 통통한 계란형인데다가 눈썹이 그린 것처럼 부처의 눈썹을 하고 있다. 입술은 얇고 분홍빛인데 무슨 말을 하든지 깨달음의 말이요, 세상의 진리를 말할 것 같은 분위기의 신비한 꼬마이다. 이 꼬마는 아들과 같이 마당에 서서 안방의 시끌시끌함을 귀로 흘리며 양동이 안을 보고있었다. 아들은 이 꼬마의 분위기에 약간은 감동도 했고 이것저것 생각하기 귀찮고 어둔 방에 나타나는 여인과 아버지의 못마땅한 얼굴이 자꾸 머리 속으로 겹쳐져 약간은 짜증스런 상태에다 무감각이 어우러져 복잡한 중인데, 양동이 안의 물고기들은 전혀 튀어나올 것 같지도 않은데 물이 사방으로 튀고 힘이 너무 거세 마치 이미 양동이 밖으로 나와 움직이는 것처럼 거대하고 확대된 것처럼 보였다. 선계의 말을 할 것 같은 옥동꼬마가 아들에게 종이를 두장 주면서 수면 위를 덮으면 물고기가 튀어 오르지 못할까 말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언가 암시를 주기 위한 행동이었을까 싶다. 당연히 양동이를 덮은 종이는 곧 힘센 물고기들의 힘에 통째로 가라앉아 버리고 아들이 아이를 보자 멋 적은 듯이 웃어버린다. 곧 손님들이 가고 밝은 대낮에 사무실의 소파에 앉아있던 아들은 아버지 책상 뒤로 스물 스물 오르는 그녀의 그림을 본다. 홀리듯 바라보는 아들을 서재에 들어오던 아버지가 본다. 아버지는 화가 나서 아들을 때리는데 그 때 아들은 무감각한 상태로 고꾸라지면서 그림만을 주시하는데 그림 역시 고꾸라져 거꾸로 스물거린다. 아들은 끝까지 그림만을 주시한 채 죽어버린다. 아버지도 아들도 다리병신이기 때문에 둘은 같이 넘어진다.

그러고 10년 후, 아버지는 조금은 복잡한 도심에서 그의 친구를 만나러간다. 자전거가 주욱 서있는 넓은 인도변에 두 대의 공중전화가 5미터를 거리 두고 서있는데 아버지는 오른쪽의 공중전화에 기대에 주머니의 친구의 전화번호를 찾고 있다. 번호를 꾹꾹 누르며 옆을 바라보는데, 친구가 보인다. 그 옛친구-호방한-는 옛날의 그 모습으로 아주 조금 늙은 모습으로 뭔가 신비해 보이는 낡은 단주들을 왼쪽 공중전화에서 전화하던 어느 여인에게 권하며, 세상의 낡은 진리와 낡은 빛과 같은 이야기를 건네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버지는 친구를 불러 오랜 해후를 하고 그의 단칸방- 노란 불빛이 어둡게 퍼져있는-에 간다. 그곳에는 그 늙은 여인도 있는데 아직도 죽지 않은 채 병색이 띈 얼굴로 힘들게 말한다. “ 10년 전에도 죽을 것 같던 내가 아직도 이렇게 살아있지.” 이 말은 아버지가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 아들이 들은 말인데 이미 죽은 아들이 이 말을 들었다는 것은 아들의 상념이거나 -아버지에게 붙어있던- 잔영이 있다가 어느 낭떠러지 길로 걸어가면서 그곳도 역시 노란 안개가 퍼진 곳, 그 늙은 여인이 길을 안내해주면서 듣는 말 같았다.

'with Tex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악과 나  (0) 2017.03.05
운남 여행 메모  (0) 2011.10.28
Camp Swing It, 2011.  (0) 2011.03.30
Review | Dexter  (0) 2009.10.30
할라피뇨 jalapeño  (0) 2009.10.28